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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오라토리오 『사계(The Seasons)』 │ 자연과 인간의 삶을 노래한 고전주의의 걸작
서론: 『천지창조』의 후속작, 자연과 인간을 품다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은 생애 말년에 대규모 합창·관현악 작품을 통해 음악 인생을 총결산했습니다. 1798년 발표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성서적 우주 창조의 서사를 다뤘다면, 그 후속작인 『사계(Die Jahreszeiten, 1801년)』는 훨씬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주제를 택했습니다. 농부의 일상, 자연의 변화, 계절의 교차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희로애락을 음악으로 담아낸 것입니다.
하이든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이는 고전주의 음악의 핵심 정신인 명료함, 보편성, 균형과 맞닿아 있으며, 오늘날에도 『사계』는 자연을 사랑하는 인류 보편의 노래로 남아 있습니다.
작곡 배경과 대본
『사계』의 대본은 고트프리트 판 스비텐(Baron Gottfried van Swieten)이 맡았습니다. 그는 영국 시인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의 장시(長詩) 『The Seasons』을 독일어로 편역하고, 음악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산문·운문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스비텐은 이미 『천지창조』의 대본을 마련한 인물로, 하이든과의 협업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탁월한 대본을 제공했습니다.
작곡 당시 하이든은 70세를 넘긴 노쇠한 나이였지만, 『사계』를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는 말년에 “내 온 힘을 다해 쓴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으며, 결과적으로 『천지창조』와 함께 오라토리오 양식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구성과 스토리: 네 계절의 순환
『사계』는 봄(Spring) – 여름(Summer) – 가을(Autumn) – 겨울(Winter) 4부로 나뉘며, 각각의 계절은 농민들의 삶과 자연 현상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농부 지몬(Simon, 베이스), 그의 딸 한나(Hanne, 소프라노), 그리고 농부 루카스(Lukas, 테너)입니다. 이 세 인물이 화자와 해설자로 나서고, 합창이 공동체적 목소리를 더합니다.
- 봄: 겨울이 물러가고, 대지가 다시 소생하는 모습. 농부들이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 여름: 태양의 열기와 폭풍우가 대지를 휩쓸고, 인간이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 가을: 풍요로운 수확과 포도주 축제, 사냥 장면 등이 등장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기쁨을 나누는 순간입니다.
- 겨울: 눈과 추위 속에서 공동체가 모여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인생의 덧없음과 영원의 의미를 성찰합니다.
봄: 생명의 시작과 희망
‘봄’ 부분은 서주에서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스며드는 듯한 음악으로 시작합니다. 플루트와 현악기의 밝은 선율은 새의 지저귐과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어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밭을 가는 합창이 등장하며, 인간 노동과 자연의 리듬이 어우러집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자연 묘사에 그치지 않고, 생명 탄생의 기쁨을 노래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습니다.
여름: 태양과 폭풍
‘여름’은 뜨거운 태양과 폭풍의 대비가 특징입니다. 처음에는 느긋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갑자기 몰아치는 폭풍 장면에서 팀파니와 금관이 맹렬히 울려 퍼지며 긴박한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의 재현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경외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 다시 고요가 찾아오는 장면은, 자연의 순환과 질서를 느끼게 합니다.
가을: 수확과 축제
‘가을’은 가장 활기차고 유쾌한 부분입니다. 농부들이 풍성한 수확을 기뻐하며 합창을 부르고, 포도주 축제의 흥겨움이 음악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사냥 장면에서 호른과 목관이 들려주는 활기찬 주제는 현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이는 하이든이 얼마나 탁월한 ‘음향 회화’의 장인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가을은 곧 풍요와 즐거움의 계절이자, 인간이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겨울: 고요와 성찰
마지막 ‘겨울’은 눈이 내리고, 추위 속에서 사람들이 모여 따뜻함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목관악기의 서늘한 음색과 현악기의 차가운 질감이 겨울의 고요를 그려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인생의 마지막 계절을 은유합니다. 사람들은 겨울의 고난을 견디며 삶의 덧없음을 깨닫고, 영원한 안식과 희망을 바라봅니다. 합창은 “의인의 길은 영원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로 작품을 마무리하며, 단순한 계절의 끝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노래로 승화됩니다.
음악적 특징과 의의
『사계』는 하이든의 음악적 특성이 집약된 작품입니다.
- 음향 회화: 새, 폭풍, 사냥, 눈 등 자연현상을 오케스트라로 생생하게 묘사.
- 합창과 독창의 균형: 공동체의 목소리와 개인의 감정을 모두 표현.
- 계몽주의적 세계관: 자연의 질서와 인간 노동을 찬미하며, 삶의 순환을 긍정.
- 보편적 주제: 종교적 틀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
특히 『천지창조』가 종교적·우주적 서사라면, 『사계』는 인간적·세속적 서사입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보완하며 하이든의 말년 예술세계를 완성했습니다.
오늘날의 감상 포인트
『사계』를 감상할 때는 각 계절의 자연 묘사와 인간 활동이 어떻게 결합되는지에 주목하면 좋습니다.
- 봄: 새소리와 자연의 소생.
- 여름: 폭풍 장면의 극적 긴장과 해소.
- 가을: 수확 축제와 사냥 장면의 활기.
- 겨울: 고요와 성찰, 영원으로의 지향.
또한 『천지창조』와 비교해 듣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한쪽은 우주적 창조, 다른 한쪽은 인간적 삶—두 작품을 함께 감상하면 하이든이 말년에 지향한 예술적 메시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
하이든 오라토리오 『사계』는 단순한 자연 찬미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계절의 순환을 노래하며, 모든 존재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봄의 희망, 여름의 두려움, 가을의 풍요, 겨울의 성찰은 곧 인생의 네 계절을 상징합니다. 하이든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진리를 음악으로 들려주었으며, 오늘날에도 『사계』는 청중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사계』는 고전주의 음악이 단순히 형식미와 균형에 머물지 않고, 삶의 철학과 자연의 질서를 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하이든 예술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인류 보편의 음악적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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