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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의 『교향곡 4번 e단조, Op.98』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자, 고전주의 형식미와 낭만주의 감성의 정점에서 탄생한 걸작입니다. 이 곡은 브람스가 추구한 ‘전통 속의 혁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구조적 엄격함과 감정의 깊이를 동시에 담아냅니다. 본 글에서는 이 곡의 각 악장 구성, 형식적 특징, 역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4번 악보와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

1악장 │ 소나타 형식과 비극적 선율

 

제1악장은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보다 응축되어 있으며, 주제 간 대비보다는 유기적인 연결과 변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도입부에서 제시되는 비화성적 음정으로 구성된 3도 하행 선율은 이 곡 전체의 비극적 정조를 예고합니다.

이 주제는 이후 악장 내내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등장하며, 브람스 특유의 동기 발전 기법(Motivic Development)이 집중적으로 사용됩니다. 제시부와 발전부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브람스는 선율보다는 리듬, 화성, 동기의 연결을 통해 ‘끊기지 않는 서사 흐름’을 구성합니다.

이 악장은 특히 관현악의 균형 잡힌 배치와 조밀한 음향 구조가 인상적이며, 악기 간의 대위적 응답이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청자는 격정이 아닌 절제된 슬픔 속에서 브람스가 말하고자 하는 내면의 고뇌를 체험하게 됩니다.

 

2악장 │ 중세적 분위기와 신비한 조성

 

2악장은 E장조로 전환되며, 1악장의 어두운 분위기와 대비되는 따뜻한 정서를 자아냅니다. 알토호른의 독특한 음색으로 시작되는 도입은 중세 성가를 연상시키며, 신비롭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이 악장은 3부 형식(A–B–A′)에 가깝지만, 브람스는 각 부분마다 음형과 화성을 치밀하게 조정하여 정적이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은 전개를 만듭니다. 특히 B부분에서는 화성의 전환과 관악기들의 섬세한 대화가 중심이 되어, 무게감 있는 서정미를 전달합니다.

브람스는 이 악장에서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보다는 음색의 배치와 시간감의 흐름을 중시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악장은 단순한 느린 악장이 아닌, 정신적 휴식과 사유의 공간으로 작동합니다.

 

3악장 │ 유일한 스케르초, 에너지의 분출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유일하게 '스케르초(Scherzo)'라는 명칭이 붙은 악장입니다. C장조의 밝고 경쾌한 성격을 지닌 이 악장은, 빠른 템포와 역동적인 리듬 패턴이 특징입니다. 리듬은 부점과 당김음이 중심이 되어 청자에게 긴장과 해방의 교차를 반복적으로 제공합니다.

중간부에서는 브리오소(brio)로 전환되며, 금관악기와 팀파니의 강렬한 음향이 악장의 정점으로 이어집니다. 전체적으로는 전통적인 미뉴에트–트리오–미뉴에트의 구조를 변형한 형태이며, 브람스는 이를 통해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전체 곡의 긴장도를 높입니다.

이 악장은 곡 전체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부분으로, 4악장의 파시칼리아와 대조를 이루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청자는 여기서 브람스의 고전적 리듬감과 낭만적 생동감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4악장 │ 파시칼리아 형식의 극적 종결

 

브람스 교향곡 4번의 백미는 단연 4악장입니다. 이 악장은 바로크 시대의 변주 기법 중 하나인 파시칼리아(Passacaglia)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8마디의 저음 주제가 총 30개의 변주를 거쳐 구조화됩니다.

도입부에서 제시되는 이 주제는 바흐의 칸타타 BWV 150에서 유래된 것으로, 브람스는 이 고전적 주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치밀하게 변주하며 현대적 감각을 부여합니다. 각 변주는 리듬, 음색, 텍스처, 화성 등에서 점진적인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종국에는 거대한 구조로 집약됩니다.

특히 마지막 변주에서는 금관과 타악이 중심이 되어 극적 종결을 이끌어내며, 이는 낭만주의 시대 교향곡 종결부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동시에 가장 장엄한 클로징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브람스는 이 악장을 통해 자신이 고전 형식에 기초하면서도, 독창적인 언어를 지닌 작곡가임을 선언합니다.

 

고전과 낭만의 결합 │ 브람스 교향곡의 미학

 

브람스는 고전주의 양식을 철저히 연구하면서도, 낭만주의의 정서와 색채를 음악적으로 조화시킨 작곡가입니다. 그의 교향곡 4번은 이러한 두 세계의 완전한 결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은 전통 형식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감정의 진폭과 내적 깊이를 확장시켰습니다.

특히 4악장의 파시칼리아는 바흐로부터의 직접적인 영향을 보여주면서도, 브람스 특유의 절제된 서정성과 철학적 감성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음악관’에 대한 브람스의 해답이자,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완성한 대표적 성과입니다.

청자는 이 곡을 통해 단지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사유의 미학과 질서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브람스 음악의 본질이며, 4번 교향곡은 그 가장 성숙한 구현입니다.

 

결론 │ 시대의 다리를 놓은 교향곡

 

브람스 교향곡 4번은 단순히 마지막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전적 전통을 철저히 계승하면서도, 낭만적 정서를 담아낸 ‘전환기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 곡을 통해 브람스는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교향악 어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작품은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곡 중 하나이며, 분석과 해석에 있어서도 끝없는 영감을 제공하는 대상입니다. 브람스가 남긴 이 마지막 교향곡은, 깊이 있는 구조와 절제된 감성으로 청자에게 시대를 초월한 울림을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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