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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마태수난곡 │ 종교적 감동과 음악적 위대함의 정수

바흐 마태수난곡 악보 이미지

 

서론: 인류 음악사에 남은 신앙의 증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S. Bach, 1685~1750)의 마태수난곡(BWV 244)은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장엄하고 감동적인 종교 음악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작품은 신약성서 마태복음 26~27장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대규모 성악곡입니다. 바흐가 1727년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 성금요일 예배를 위해 작곡한 이 곡은, 단순한 예배 음악을 넘어 인류 보편적 감정인 고통, 희생, 구원의 의미를 담아냄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마태수난곡은 ‘종교적 오라토리오’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음악적 완성도와 신앙적 깊이를 동시에 구현했습니다. 합창, 독창, 관현악이 어우러지는 이 방대한 작품은 연주 시간이 3시간에 달할 정도로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바흐의 음악 세계를 대표하는 정점에 자리합니다.

 

작곡 배경과 시대적 맥락

 

바흐가 활동하던 18세기 초반 독일 루터교 전통에서, 성금요일 예배에는 ‘수난곡(Passion)’이 중요한 음악적 형식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수난곡은 성서 본문을 낭독하거나 노래하며, 예수의 고난을 회중과 함께 묵상하는 예배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바흐는 이미 1724년 요한수난곡(BWV 245)을 작곡한 바 있었고, 그보다 더욱 장대한 규모의 작품으로 마태수난곡을 구상했습니다.

1727년 4월 11일, 라이프치히 성토마스교회에서 처음 연주된 이 작품은 예배의 일부로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청중은 오늘날처럼 ‘공연’으로 감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예배의 일환으로 이 곡을 체험한 것입니다. 바흐는 음악을 통해 단순한 신앙적 교리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흔드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구조와 편성

 

마태수난곡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며, 전체적으로 68곡(아리아, 합창, 레치타티보, 코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흐는 두 개의 합창단과 두 개의 오케스트라를 배치하여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음향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복음사가(에반겔리스트)’가 성서 본문을 낭독처럼 노래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예수와 베드로, 빌라도 등 인물들의 대사가 음악적으로 표현됩니다.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 레치타티보: 복음사가가 성서 본문을 전달.
  • 아리아: 등장인물의 내적 감정을 표현.
  • 합창: 회중(청중)의 감정과 신앙을 대변.
  • 코랄: 루터교 찬송가 선율을 기반으로 하여 공동체적 묵상을 이끔.

특히 루터교 신자들에게 익숙한 코랄 선율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어, 예배에 참여한 신도들이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함께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적 특징

 

마태수난곡의 음악적 특징은 ‘극적 서사’와 ‘영적 묵상’의 균형에 있습니다. 레치타티보는 사건의 흐름을 설명하는 서술적 역할을 하지만, 단순히 이야기 전달에 그치지 않고 긴장과 해설을 함께 담습니다. 아리아는 개인의 내적 감정을 깊이 있게 묘사하며, 청중이 사건 속 인물들과 감정적으로 공감하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Erbarme dich, mein Gott(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아리아는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뒤 통곡하는 장면에서 불려지는데, 아름다운 알토의 선율과 바이올린 오블리가토가 어우러져 인간적 회한과 구원의 갈망을 절절히 전합니다. 이 곡은 수난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 중 하나로, 단순한 종교적 울림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슬픔과 죄책감을 상징합니다.

 

합창과 극적 긴장

 

마태수난곡에서 합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극적 긴장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군중이 예수를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라!”를 외치는 장면은 압도적인 합창으로 표현되어 청중을 충격 속에 몰아넣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청중이 스스로 그 군중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또한 두 합창단이 서로 다른 입장을 교차하며 노래하는 부분은, 인간 내면의 갈등과 세상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러한 대위법적 합창 기법은 바흐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코랄의 의미

 

마태수난곡 곳곳에 삽입된 코랄은 루터교 신자들에게 익숙한 멜로디로, 공동체적 신앙 고백의 기능을 합니다. 바흐는 단순한 찬송가 선율을 복잡한 화성과 대위법으로 확장하여, 단순한 교회 음악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는 회중이 단순히 ‘구경꾼’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신앙적 체험에 직접 참여하도록 이끄는 효과를 냅니다.

 

대표적인 연주와 해석

 

마태수난곡은 19세기 후반까지 거의 잊혀졌다가, 1829년 펠릭스 멘델스존이 라이프치히에서 이 곡을 부활시켜 다시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후 이 작품은 서양 음악사의 위대한 걸작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이후에는 카를 리히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필립 헤레베헤, 존 엘리엇 가디너 등 세계적 지휘자들이 자신만의 해석으로 마태수난곡을 연주했습니다. 리히터의 해석은 장엄하고 극적인 반면, 가디너는 역사주의적 접근을 통해 당시의 음향을 재현하려 했습니다. 연주자의 신앙적 배경이나 해석적 철학에 따라 음악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이 곡의 특징입니다.

 

역사적 의의

 

마태수난곡은 단순한 종교 음악을 넘어선 보편적 예술로 평가됩니다. 인간의 고통, 죄, 회한, 희망, 구원의 메시지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두 합창단과 두 오케스트라, 독창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 속에서, 바흐는 음악적 질서와 신앙적 감동을 동시에 실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종교적 맥락을 넘어, 오늘날에도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유대교, 불교, 무신론자 등 신앙을 달리하는 사람들조차 이 곡을 들으며 ‘인간적 고통과 구원의 보편성’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태수난곡은 진정한 ‘인류의 음악’이라 불립니다.

 

오늘날의 감상 포인트

 

오늘날 마태수난곡을 감상할 때는 다음과 같은 포인트를 고려하면 좋습니다.

 

  • 작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합창의 장엄한 대칭성.
  •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를 따라가며 성서 이야기를 재체험하기.
  • 아리아의 내적 감정 표현을 개인적인 묵상과 연결하기.
  • 코랄이 등장할 때, 회중의 목소리로 함께 고백하는 듯한 감각 느끼기.

특히 “Erbarme dich”와 같은 아리아는 언어를 넘어선 감정적 전달력을 지니므로, 독일어 가사를 몰라도 충분히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

 

바흐 마태수난곡은 단순히 한 시대의 종교 음악을 넘어, 인간 보편의 감정과 진리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예수의 수난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구원을 성찰하게 하고, 음악적 차원에서는 합창·관현악·성악이 결합한 웅장한 예술적 건축물을 경험하게 합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 이야기 속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은 특정한 종교를 초월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 보편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마태수난곡은 단순히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음악, 우리 삶 속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음악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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